정산 기준 모호로 납품 중단 속출…영세업체들 생존 위협 직면 소제목 2: 농축산업계 "1900억 규모 미정산"…정부 차원 대응 촉구
대형 유통업체 홈플러스가 영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납품업체에 대한 판매대금 정산을 미루면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홈플러스는 기업회생 신청 이후 “어려운 소상공인부터 우선 변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로는 정산이 지연되거나 기준이 모호해 납품을 중단하는 사례까지 속출하고 있다. 정산의 우선 순위 기준조차 공개되지 않아 일부 납품업체들은 혼란과 불안을 호소하며, 대형 유통사에 대한 구조적 의존이 약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로 번지고 있다.
홈플러스에 생활용품을 납품하던 A사는 지난 1월 물품을 판매한 뒤 대금 8000만 원에 대해 6월에야 변제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A사 관계자는 “소상공인부터 순차적으로 변제한다는 말만 믿고 기다렸는데, 왜 우리 업체는 정산 대상에서 빠졌는지 설명조차 듣지 못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비슷한 상황은 다수의 중소 납품업체들에게도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판매 규모가 작고 외부 자금 조달이 어려운 업체일수록 생존 위협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여름철 침구류를 판매하던 B사는 홈플러스의 정산이 몇 차례 밀리자 아예 납품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B사 대표는 “과거 티몬·위메프 사태 때도 정산을 못 받아 피해를 본 경험이 있다”며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이번엔 미리 대응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산이 불확실한 홈플러스에 납품하는 대신 재고를 처리할 수 있는 다른 유통 경로를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홈플러스의 정산 기준이 공개되지 않아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어떤 기준으로 정산 순서를 정하는지, 매출 규모나 거래 빈도, 제품 카테고리별로 우선순위가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으면서 업체들 간 불만과 불신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일부 대기업 계열 납품업체들이 먼저 정산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면서, “슈퍼 갑”에 맞서기 어려운 영세 업체들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있다.
정산 불안이 확산되자, 농축산물 납품 피해를 입은 업계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2개 농축산 관련 단체가 모인 농축산연합회는 지난 13일 “홈플러스가 연간 1900억 원 규모의 납품 대금 정산을 미루고 있다”며 정부의 대응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유가공 업체 중에는 최대 100억 원 이상을 받지 못한 곳도 있다”며, “납품을 중단하면 거래처를 잃고, 계속하면 손해를 입는 진퇴양난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홈플러스처럼 대형 유통망을 장악한 유통사가 정산 지연 문제를 일으켜도, 영세 납품업체들이 쉽게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납품업체들은 “지금 따지면 향후 거래가 끊기거나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돼 조용히 넘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대기업 유통사의 입김이 센 현실 속에서 약자인 소상공인들은 피해를 입어도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는 셈이다.
홈플러스 측은 “정산은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업체별 계약 조건과 사정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변제 계획이나 기준을 명확히 공개하지 않으면서 불투명성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정부는 홈플러스 기업회생 절차를 감독하면서 납품업체들의 피해 최소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유통 공룡들의 정산 시스템이 영세 상공인의 생존과 직결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산 기준의 투명한 공개와 영세업체 보호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